백성훈
▲백성훈 목사와 이름없는교회.
시편 77편


우리가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면 불안하고 낙심이 됩니다

어느 전도사님이 신학교를 다니던 중 결혼을 하고 첫째 아이를 낳았습니다. 너무 행복한 시절이었지만, 너무 가난한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 전도사님의 어머니가 유방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남편과 사별을 하고 홀로 지내셨는데, 형편이 어려워 건물 청소를 하는 일로 생계를 이어 가셨습니다. 그런데 암이 생겨 수술을 하니 수술비를 마련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연히 전도사님은 아들로서 수술비를 감당해야 했고, 가진 돈에 빚까지 내어 수술하도록 도와드렸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지만, 전도사님은 당장 다음 학기 등록비와 생활비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피곤했지만 매일 새벽기도를 하면서 등록비와 생활비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등록비를 마련하지 못하고 휴학을 했습니다. 너무 실망과 낙심이 되었고, 마치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처럼 거절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하나님 학교도 다니고 아이도 키워야 하는데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왜 저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십니까? 저도 더 이상 목회자로 살기 어려우니 다 때려치우겠습니다” 하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전도사님 사모님이 할 말이 있다고 진지하게 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사모님은 기도에 응답을 받았다며, 마음이 평안해졌다고 했습니다. 전도사님은 어디서 돈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내심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더 기다리래. 그게 응답이야. 응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게 응답이었어. 그러니 우리가 더 인내하고 더 기도하자. 하나님의 시간이 아직 아니니 더 기도하자.”

이 말에 전도사님은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제 기도를 다 듣고 계신데 제가 믿지 못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시간에, 제가 원하는 방법으로 응답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어머니 수술비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보험이 있었음을 알게 되어 보상을 받게 되었고, 다음 학기에 어느 교회의 장학금이 연결되어 학교에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기도하고 응답을 받는 일은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대부분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이 부분을 가장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이것을 먼저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하고 낙심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하나님의 무응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지금 시인도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지만, 응답이 없기에 불안하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셀라, 시편 77:2-3)”.

여기서 ‘불안하여 근심하니’라는 표현은 불안해서 불평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정도로 불평을 했냐면, ‘내 마음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라고 말했듯이, 위로조차 받기 싫을 정도로 응답이 없는 것에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응답 없는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불안에서 ‘괴로움(4절)’으로 변했고, 더 길어지니까 이제는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시편 77편 7-9절)”.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고 침묵하시면 거절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과 방법을 통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때 우리도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인내하며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시인도 이런 불평을 했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묵상하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인내할 때 어떻게 인내하느냐가 중요한데, 시인이 그 올바른 인내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바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과거를 묵상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과거도 묵상하면 좋지만, 성경에 기록되니 신앙의 선배들의 일들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경험을 넘어,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꼭 붙들고 있는 것이 기도의 핵심이고 응답의 열쇠입니다.

시인은 11절부터 그 과거를 묵상하기 시작합니다. 과거의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위대하시며 기이한 일을 행하신 분이었습니다(13-14절). 시인은 그 과거의 하나님이 시인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야곱과 요셉, 모세와 아론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개인의 과거를 넘어 성경의 말씀을 붙들고 묵상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기도할 때 성경을 묵상해야 합니다.

참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여 주셨을 때, 신앙의 원리만 쓰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경험들을 함께 쓰도록 하신 점입니다. 그 삶과 경험들을 통해 지금 우리가 스스로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신약 성경으로 끝나고 그 다음을 주지 않으신 이유도, 신·구약에 기록된 원리, 그리고 등장인물의 삶과 경험들을 통해 충분히 예수님이 마지막 때 다시 오실 날까지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의 또 다른 경험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성경에 기록된 삶의 이야기들을 늘 묵상하면서 지금 우리가 기도하며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속량하셨나이다(15절)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20절)”.

이제 시인은 결론을 내립니다. 지금 당장 구체적인 응답이 없지만 도망 생활 중에도 결국 축복을 받은 야곱과 요셉처럼 자신을 속량하시고, 광야 생활 중에도 축복을 받은 모세와 아론처럼 자신을 인도하실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으로 이루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과 요셉, 모세와 아론의 하나님은 지금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불변의 하나님이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신실한 하나님이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분은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며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시간과 공간조차도 하나님이 창조물이기에 비록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방법과는 다르지만 그분의 시간과 방법을 통해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지금 무엇을 기도하고 있습니까? 기도하면서 내 마음에 조급함과 불안함이 있다면, 이 시편 77편을 통해 다시 평안의 마음을 누리십시오. 무응답도 응답이요, 인내도 기도의 과정임을 다시 묵상하면서 기도하던 무릎을 풀지 마시기 바랍니다.

백성훈 목사(김포 이름없는교회)
<시편의 위로>, <시편의 소망>, <팀사역의 원리> 저자